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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Tips

악기에 따라 성별이 존재할까

by BetterManTomorrow 2020. 6. 22.

MBC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알고 계신가요? 유느님을 메인으로 무한도전을 그리워하는 분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가뭄의 단비같은 프로그램인데요. 유산슬을 통한 트로트 돌풍에 이어, 최근에는 '싹쓰리'라는 혼성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더라고요.



부캐라는 개념을 통해 꾸준히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 도전 중에 하나가 하프 연주자로 변신한 유재석님이었는데요. 일명 '유르페우스'였죠. 클래식을 전혀 접해보지 못해본 분들이라면 무심코 지나가셨을 수도 있지만, 조금 접하신 분들이라면 하프라는 악기를 선택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오늘 글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회에서 남성 연주자가 '하프'나 '플루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우신가요? 트럼펫, 튜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여성 연주자를 보며 신기하게 느낀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남성 팀파니스트나 트롬보니스트 혹은 여성 플루티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앞선 예시와는 달리 마지막 질문이 좀 더 익숙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렇듯 우리는 은연 중에 남성 악기와 여성악기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시지 않았다면 다행이고요. 실제로 악기를 배우는데 성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예전과 달리 지금은 모든 악기의 교육과정이 남성과 여성에 평등하게 개방되고 있지요. 그런데도 이런 식의 관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 때문 일까요?


다윗왕의 악기인 '하프'는 수세기 동안 남성의 악기로 여겨집니다. 그러다 18세기에 사회, 문화적인 변화를 겪으며 전형적인 여성 악기로 탈바꿈하지요. 악기 자체의 무게가 엄청나고 팽팽한 현을 연주하려면 손가락 힘이 상당히 세야하기 때문에 여성이 연주하기에는 좀 벅찰 수도 있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바이올린'은 오랫동안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악기로 여겨집니다. '여성적인' 형상을 띤 악기의 모습이 동성인 여성에게 꺼림칙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죠. (저의 의견이 아닙니다..) 마찬기지 이유로 '류트'역시 남성 전용 악기였지요. 이후 여성에게도 '류트'에 버금가는 아름답고 청아한 음향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16세기에 '버지널'이라는 악기가 생깁니다.


이런식으로 여성을 멀리한 악기들은 20세기에도 존재하지요. 자궁에 공명감이 없다는 이유로 트럼펫은 여성에게 맞지 않는 악기로 분류됩니다. 또 베를린 필하모닉의 한 남성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1990년대에 한 인터뷰에서 여성은 땀을 많이 흘리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훌륭한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요.


심지어 20세기 말에 빈 필하모닉 단원들은 여성 음악가들을 압박하며 지극히 편협한 발언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남성만이 좋은 오케스트라 음악가가 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성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으니 굳이 이 주장이 틀린 이유를 굳이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스러운 하프"나 "남성적인 베이스 기타" 같은 표현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구분은 악기의 구조나 제작 방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습의 문제일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악기 분류 방식과 체계가 존재해왔습니다. 3세기의 아리스티데스 퀸틸리아누스는 악기의 음향에 따라 '남성적인 악기'와 '여성적인 악기'를 구분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있는가', '영혼이 없는가'라는 범주에 따라 악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별은 악기를 분류하는데 더이상 아무런 기준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놀면뭐하니' 속에서의 유르페우스는 우리가 예능으로만 접했던 것 보다 훨씬 의미가 있는 캐릭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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